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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 이야기: 벽은 살아있다

by 봉황(Phoenix)2026. 8. 27.

어두운 배경 위에 알록달록한 거품들이 그려진 이미지. 거품들은 각기 다른 색상과 크기를 띠고 있으며, 이미지 전체에 흩어져 있다.

 

 

"밥 먹어야지!"
"네. 엄마. 잠시만요."

아침에 일어난 나는 방 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다채로운 기운 덩어리들이 벽을 타고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그저 그 움직임을 여기저기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새 3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다양한 빛깔의 기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황홀감을 느꼈다.

 

"안일어나고 뭐해! 어서 밥 먹어야지!"

다시한번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아쉬움을 뒤로한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현실을 자각하면서 그 아름다운 빛깔의 방울들은 눈앞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내가 본 것을 이야기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단순한 착시현상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시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서울에서 하숙집 생활을 할 때였다. 당시 수행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항상 수행을 마칠때면 벽을 한번씩 쓰다듬어 주었다. 가끔은 소중한 친구처럼 정답게 안아주기도 하였다. 특히나 더운 여름날에는 벽의 차가운 감촉이 좋기도 하고 그저 벽의 존재에 대해 감사함을 느껴서 더 그러했던 것 같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벽에서 점점 푸른 빛깔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매일 매일 관심을 주면 줄 수록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그 빛깔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날 하숙집 누나와 동생들이 함께 밥을 먹자고 하였고 나는 내 방에 그들을 초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벽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유독 내가 쓰다듬어준 벽에서만 푸른 빛깔이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만의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일 수 있다는 깨달을음 얻게 된 순간이었다. 방문한 세 사람 모두 그 빛깔을 볼 수 있었고 정말 신기해 하였다. 내가 자초지정을 설명하니 그들은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하숙 생활을 마친 뒤 세월이 지나 그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벽지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으나 더이상 푸른 빛깔은 나오지 않았다. 주인이 바뀌어서 그런지 벽의 감정도 사그라든 것처럼 보였다. 참고로 벽지는 한번 변색되면 색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벽지에 그대로 남아 있는 시커먼 얼룩으로 미루어 보아, 벽지를 새로 바꾼 것도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한 푸른 빛깔은 벽지 색 자체가 푸르게 바뀐 것이 아니라 벽지에서 하늘색 푸른 빛깔이 뿜어져 나와 방을 신비로운 기운으로 가득 채운 것이었다.

 

 

봉황